
블로그를 한참 방치해뒀다가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첫 글은 거창한 주제보다 실제로 겪었던 일 중에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싶었던 걸로 골랐습니다.
바로 법인차량으로 사고가 났을 때 이야기입니다.
신호대기 중이었는데, 뒤에서 쿵
평범한 평일이었습니다. 회사 법인차량을 몰고 나갔다가 신호대기로 정차해 있는데, 뒤에서 그대로 들이받혔습니다.
브레이크 밟는 소리도 없었습니다. 내려서 보니 상대방이 졸음운전이었더군요.
정차 중 후방추돌이라 과실 다툼의 여지는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험 처리하면 저는 할증되는데, 수리비는 제가 현금으로 드리면 안 될까요?"
개인 차량이었다면 잠깐이라도 고민했을 겁니다. 범퍼 정도면 견적 받아서 받고 끝내는 게 서로 편하니까요.
하지만 법인차량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정중히 거절하고 보험 접수를 했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이유 1. 그 차는 '내 차'가 아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 놓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법인차량의 소유자는 회사입니다. 운전자는 사용자일 뿐, 자산 처분 권한이 없습니다.
- 상대방과 현금으로 합의할 권한이 운전자에게 없습니다.
- 수리비를 개인 계좌로 받으면, 회사 자산에 대한 손해배상금을 개인이 수령한 모양새가 됩니다.
- 수리를 안 하고 현금만 받는 이른바 미수선수리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차량 반납이나 매각 시점에 문제가 됩니다.
당장은 "몇십만 원인데 뭐 어때" 싶어도, 나중에 감가나 재매각 이슈가 생기면 설명하기 곤란해집니다.
법인차량 사고는 처리 결과가 회사 장부에 남아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안전합니다.
이유 2. 후방추돌은 '내일'이 무섭다
이게 실제로 더 결정적이었습니다.
사고 직후에는 멀쩡했습니다. 목도 안 아프고 어지럽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후방추돌은 그날보다 다음 날, 그다음 날이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저도 며칠 지나면서 목이 뻐근해졌습니다.
현금 합의를 하면 보통 "이 사고에 대해 더 이상 청구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그 상태에서 며칠 뒤에 증상이 나오면, 이미 합의가 끝나 있어 대인 치료비를 청구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차량 수리비(대물)와 별개로 대인 접수를 반드시 하는 게 좋습니다.
대인은 법인차량이든 개인차량이든 상관없습니다. 다친 건 회사가 아니라 사람, 즉 저니까요.
접수해두면 병원 진료를 받을지 말지는 나중에 판단하면 됩니다. 접수 자체가 치료를 강요하는 게 아닙니다.
법인차량이라서 추가로 챙겨야 했던 것들
개인차 사고와 달랐던 부분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회사 보고가 먼저입니다
현장 사진, 상대 차량 정보, 사고 경위를 정리해서 담당 부서에 바로 알려야 합니다.
회사에 따라 사고보고서나 운행일지 양식이 정해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2) 운전자 범위 특약을 확인해야 합니다
법인차량 보험은 임직원 한정 운전처럼 운전자 범위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범위를 벗어난 사람이 운전 중이었다면 보상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번처럼 상대 과실 100%인 사고는 상대 보험으로 처리되니 영향이 적지만, 반대 상황이었다면 큰 문제가 됩니다.
3) 대차(렌트) 명의도 회사입니다
대차를 받을 때 계약자와 청구처를 개인이 아니라 법인으로 맞춰야 뒤탈이 없습니다.
4) 수리비 처리와 서류
수리 후 세금계산서, 보험 처리 내역 같은 서류는 회사에 그대로 넘겨야 합니다.
차종에 따라 부가세 매입세액 공제 여부가 달라지는 등 회계 처리가 개인차와 다르니, 판단은 경리 담당자에게 맡기고 서류만 빠짐없이 챙기면 됩니다.
5) 업무 중 사고라면 산재 검토도 가능합니다
출장이나 외근 중 사고라면 자동차보험 대인과 별개로 산재 적용 여부를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법인차량 사고에서 개인차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딱 하나입니다.
결정 권한이 운전자에게 없다는 것.
그래서 현장에서의 원칙도 단순해집니다.
- 상대방이 현금 합의를 제안해도 그 자리에서 수락하지 않는다
- 회사에 먼저 알리고, 보험 접수로 처리한다
- 대물과 별개로 대인 접수는 챙긴다
- 사진과 서류를 남긴다
상대방에게는 조금 매정해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날도 좀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자산을 쓰는 사람으로서 기록으로 남는 방식을 선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며칠 뒤 목이 뻐근해졌을 때, 그 판단이 저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 글은 개인 경험을 정리한 것으로, 보험 약관이나 회사 규정은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실제 처리는 소속 회사 규정과 가입 보험사 안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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